레스덕' 노트

첫 팀리드의 진짜 벽, 팀원이 아니라 경영진이었어요

막 투자받은 스타트업에서 첫 팀장을 맡고 보니, 진짜 벽은 팀원이 아니라 경영진이었어요.

지시만 내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 윗선과 실무 사이에서, 미움받을 용기로 직언하며 버티고 있어요.

처음 팀을 맡던 날, 가장 겁났던 건 팀원 관리였어요. 다 합쳐도 열다섯 남짓한 작은 회사, 그중 다섯 명짜리 팀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이끄는 게 낯설었거든요.

막상 들어가 보니 팀원은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진짜 막힌 건 그 위, 경영진이었어요.

첫 팀리드가 마주한 진짜 벽은 팀원이 아니라 경영진이라는 회고

팀원보다 위에서 먼저 막혔다

팀원들과는 솔직하게 대화하면 됐어요. 불만도, 방향 논의도, 서로 꺼려하던 이야기도 직접 꺼내면 대부분 풀렸죠. 제가 미리 겁먹었던 ‘팀 관리의 어려움’은 대부분 이 부분이었는데, 의외로 매끄러웠어요.

벽은 그 위에 있었어요. 경영진이 어떤 배경에서 왔느냐가 조직 문화 전체를 결정하더라고요.

스타트업과 대기업은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

대기업 높은 자리에 있다가 스타트업으로 온 분들이 가져오는 습관이 있어요. 결정은 위에서 하고, 지시는 명확하게 내리고, 실행은 아래가 알아서 하는 구조. 대기업에선 그게 역할 분리이고 효율이니까요.

그런데 막 투자받은 초기 스타트업은 요구하는 게 완전히 달라요.

대기업 고위직이 익숙한 방식 vs 초기 스타트업이 요구하는 방식

의사결정

대기업 모드 위에서 정해 지시로 내려보냄
초기 스타트업 모드 실무와 함께 세부까지 정함

일정 책임

대기업 모드 아래가 무조건 맞춰야 함
초기 스타트업 모드 되는 일정인지 위아래가 같이 따짐

제품 방향

대기업 모드 위에서 정하고 수시로 바꿈
초기 스타트업 모드 바꿀 때 드는 비용까지 보고 신중히

문제 해결

대기업 모드 담당자가 알아서 풀어 보고
초기 스타트업 모드 위도 한 단계 내려와 같이 들여다봄

초기 스타트업은 인력도 자원도 얇아요. 위가 정말 한 단계 내려와 실무와 호흡해야 맞아 돌아가는 구조죠. 그 호흡 없이 결정만 위에서 일방적으로 떨어지면, 아래는 실행 가능성을 따질 시간도 없이 막무가내 일정을 받게 돼요.

문제는 그렇게 정해진 일정이 어긋나도, 책임은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잘되면 위의 공이 되고, 안 되면 실행한 사람 탓으로 남죠. 저는 딱 그 중간에 서 있었어요.

이게 제 회사만의 일인가 싶었어요. 그래서 밋업이나 커피챗에서 다른 회사 사람들에게도 슬쩍 물어봤죠. 비슷한 얘기가 꽤 많았어요.

특히 투자를 받은 직후 인력을 빠르게 늘린 팀일수록, 그 다음 단계에서 삐걱댄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어요. 사람은 두 배가 됐는데 의사결정 구조는 그대로니까, 위는 더 멀어지고 아래는 더 막막해진다는 거였죠. 제 경험이 유별난 케이스가 아니라 어떤 단계에서 흔히 나오는 일이구나, 그 대화들에서 짐작하게 됐어요.

팀이 식어가는 걸 지켜봤어요

투자받기 전에는 달랐어요. 다들 뭔가 되겠다는 에너지가 있었고, 회의에서 서로 의견을 내고 부딪치기도 했죠. 방향이 틀렸다 싶으면 누군가는 손을 들었어요.

그게 조금씩 사라졌어요. 팀원이 의견을 내도 위에선 잘 듣지 않았죠. 대기업 경력과 본인 경험을 앞세워 밀어붙였는데, 정작 듣는 사람은 공감도 납득도 안 됐어요. 몇 번 말해보다 안 통하면, 사람은 결국 입을 닫게 되죠.

AI도 그 분위기를 부추겼어요. 위에선 ‘도와주겠다’며 나섰는데, 돌아온 건 검수도 안 한 장황한 AI 결과물뿐이었죠. 그걸 그대로 던져놓고는, 일이 틀어지면 화부터 냈어요. 그러자 지켜보던 팀원과 새로 온 사람들도 똑같아졌죠. 굳이 공들이지 않고, AI 돌려 적당히 답하고 넘기는 쪽으로요.

제일 먼저 회사를 떠난 건 소중한 동료들이었어요. 오래 같이 부대낀 사람들이 큰소리 한번 없이 조용히 빠져나갔죠. 그걸 지켜보는 게 팀장으로서 가장 무력했던 시간이에요. 붙잡을 명분도, 바꿔줄 힘도 제겐 없었어요.

물론 이건 제 자리에서 본 한쪽 그림이에요. 위에는 위대로의 사정이 있었겠죠.

팀이 고분고분해지는 게 좋은 신호는 아니에요.
의욕 없이 순응하는 것과 신뢰 위에서 협력하는 건 겉보기엔 닮았는데 본질은 정반대거든요. 사람들이 입을 닫는 건 게을러서가 아니라, 의견을 내봐야 바뀌지 않는다는 걸 학습했기 때문이에요. 그게 가장 무서운 신호였어요. 이 차이에 대한 생각은 AI로 산출물은 늘었는데 회사는 더 벌고 있을까에도 조금 적어둔 적 있어요.

내가 쥔 카드는 솔직함뿐이었어요

그 팀의 첫 팀장을 맡았어요. 대단한 권한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작은 회사에선 직함이 주는 힘도 거의 없고요. 제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딱 하나였어요.

솔직하게 말하는 것.
방식은 단순했어요. 비현실적인 일정이 내려오면 “그 날짜엔 안 됩니다”로 끝내지 않고, 왜 안 되는지를 분해해서 보여줬어요. 기술적으로 무리인 건 되는 척하지 않고 한계를 그대로 말했고요. 제품 방향이 또 뒤집히면, 그게 실행 팀에 얹는 재작업 비용을 매번 수면 위로 끌어올렸어요.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매번 분위기 깨는 사람이 되는 거니까요. 위에선 “왜 자꾸 안 된다고만 하냐”는 쪽으로 반응이 돌아왔고, 저는 그걸 견디면서도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어요. 다들 좋게좋게 넘어가려는 자리에서 혼자 브레이크를 잡는 역할은, 생각보다 외롭더라고요.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했어요. 정확히는, 미움받는 걸 감수하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자리였죠.

미움받을 용기를 낸 게 아니라, 그게 유일하게 남은 선택지였어요.

왜 이 구조에선 설득이 잘 안 될까

직언을 해도 잘 먹히지 않았어요. 처음엔 제 전달 방식 탓이라고만 봤는데, 원인은 다른 데 있었어요.

책임을 지지 않는 위는, 아래에서 올라오는 논리에 반응할 이유가 없어요.

일정이 어긋나도 그게 위의 책임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비현실적 일정’이라는 피드백은 설득 카드가 되지 못해요. 틀린 방향에 대가를 치르지 않는 사람에게는 방향을 바꿀 유인 자체가 없죠.

그래서 이건 한 사람의 능력 문제라기보다 역할과 책임 설계의 문제예요. 흔히 윗사람을 움직이는 게 어렵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이건 그것과도 결이 달랐어요. 보고를 올릴 상대가 결과의 책임에서 비켜 앉아 있는 느낌이랄까요. 정답이 아니라 제가 한복판에서 겪고 있는 회고예요.

그래도 붙잡는 것들

아직도 설득은 안 돼요. 쫓겨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사라진 적도 없어요. 마음이 꽤 힘들 때도 많고요. 그런데도 이 자리를 버티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주위에선 굳이 힘든 길을 갈 필요가 있냐고 물어요. 그래도 저는 힘든 길이 사람을 더 빨리 키운다고 봐요. 쉬운 자리에선 배울 수 없는 감정과 경험이 있어요. 지금 이 긴장감도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라고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설득이 안 되고 일정이 또 어긋날 때는, 이걸 ‘구조 문제’로 떼어놓고 봐요. 개인을 탓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죠. 역할과 책임 설계가 어긋난 문제로 보면, 화내는 데 쓸 에너지를 그나마 문제를 푸는 쪽으로 돌릴 수 있어요.

팀 분위기가 가라앉고 다들 각자도생으로 흐를 때마다, 결국 남는 건 소통과 분위기라는 걸 깨달아요. 문제를 푸는 힘은 기본값이에요. 그 위에서 사람이 움직이게 만드는 게 팀장이 진짜 하는 일이고요. 하필 나쁜 사례 한복판에서 그걸 거꾸로 배우는 중이에요.

다시 그 자리에 선다면

이 자리가 제게 남긴 건, 다음에 비슷한 조직을 알아보는 눈이에요.

저라면 합류 전에 한 가지를 꼭 확인해요. 의사결정이 실무까지 내려오는 조직인지. 막 투자받아 사람을 빠르게 늘리는 회사일수록, 위가 결정만 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로 흐르기 쉬웠어요. 면접에서 ‘제품 방향이 바뀔 때 그 비용을 누가 같이 지느냐’를 물어보면, 답하는 방식에서 많은 게 읽혀요.

이미 그 안에 있다면,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부터 갈라놓는 편이에요. 책임이 위로 안 올라가는 구조는 저 혼자 못 바꿔요. 대신 아래와 솔직하게 대화하고, 분위기를 깨더라도 비용을 분명히 짚고, 그 와중에 제 성장을 챙기는 것. 여기에 힘을 모으는 게 오래 버티는 길이에요.

레스덕의 정리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미해결이에요.

설득은 여전히 안 됐고, 투자금은 계속 사라지고, 시간은 흘러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틀린 방향’이 하나씩 입증되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프면서도 뭔가 확인되는 느낌이 들어요. 그 양면적인 감정이 지금 이 자리의 솔직한 온도예요.

그래도 얻은 게 있어요. 동료들과 뭔가를 같이 부수고 같이 맞추는 과정에서 문제해결력이 두꺼워지는 게 느껴져요. 나쁜 사례를 한복판에서 겪으며 역으로 배운 거라 더 안 잊힐 것 같고요.

문제해결력은 기본값일 뿐, 결국 팀을 움직이는 건 소통과 분위기예요.

커리어를 어떻게 쌓아야 할지도 더 선명해졌어요. 예전에 연봉을 바꾼 3축을 정리하며 개발 바깥(기획·매니징)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지금 이 경험이 딱 그 연장선이에요.

팀장을 하면서 개발자로서의 성장이 소홀해진다는 자각도 따로 생겼어요.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풀게요. 요즘 밋업·컨퍼런스·커피챗으로 다시 날을 세우는 중이거든요.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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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덕이 엄지를 들고 있는 포즈

레스덕

· 운영자

현직 개발자가 커리어·기술·돈 주제를 공부하고 판단한 개인 기록입니다. 공식 자료를 간략히 요약하고, 그 위에 저의 경험·판단을 덧붙입니다. 전문 자문이 아니므로, 중요한 결정 전에는 최신 원문과 전문가 상담을 함께 확인해 주세요.

최종 수정 2026.06.13 · 문의 lessduck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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